누구에게나 출산, 육아가 처음인 때가 있듯이

나와 남편도 임신, 출산, 육아가 처음이었다.

 

보통 첫애는 늦게 나온다는 속설이 있던데

 

그 속설에 맞게 내 첫아이는 40주가 넘어서도

엄마 뱃속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태아를 담당했던 교수님도 나 역시도

자연분만을 원했기에 40주 3일차에 입원해

유도 분만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밤 9시, 병원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출산할 때까지 지겹도록 있을

낯설고 차가운 분만실에 몸을 뉘었다.

 

그땐 그렇게 긴 시간을 진통을 할 줄도 몰랐기에

그저 누어서 핸드폰으로 맘 카페 출산 후기와

웹툰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중간중간 3대 굴욕이라던 내진, 관장 등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민망하거나

굴욕적이지 않아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다.

새벽 4시경 유도 분만 촉진제를 투여한다고

간호사분이 들어오셔서 링거에 주사를 놓는데

 

다가올 고통을 미리 알았더라면 덜 아팠을까..

무통주사가 산모에게 좋지 않다는 말에

무통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종이에 체크했던 잉크가 마를 틈이 없이

 

난 격렬하게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소리쳤다.

평소 생리통도 없었기에 배가 쪼여 자궁을

수축하는 아픔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누워있어도, 서있어도,

앉아 있어도 어떻게 해도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공감성 수치가 낮은 남편조차 본인이 

아픈 거처럼 같이 고통스러워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아파해줘서 고마웠다.

뭔가 조리원 동기처럼 내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의 제일 가까운 사람이니까

 

언제든 그때 출산 이야기로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통주사를 놓은 후 밤을 새우며

쌓여있던 피로가 몰려와

분만실 침대 위에서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2시간가량 푹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간호사분들과 담당 교수님이

자궁문이 거의 열렸다며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분만 준비를 해야 한다 하셨다.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모든 분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의 분만 과정을 남편이

함께하길 바랐기에 교수님의 동의를 얻었다.

 

부리나케 소독과정을 거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남편이 구석에서 조용히 날 응원해 주었다.

이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남편이 나의 출산 과정을 촬영해 주길 바랐고

 

또한 아이가 나오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온전하게 함께 하기를 바랐다.

 

 

우린 한배를 탄 가족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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