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 그 얼마나 경의로운가

처음 리아가 뱃속에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 안에 무언가 쑥 빠져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출산하고 아기가 바로
울던 장면이 떠오르는데 핏기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들어 올린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고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간호사분이 능숙하게 아이 입속의 양수를
빼줌과 동시에 아이는 살아있음을 알려주듯이
분만실이 떠나갈 듯 우렁차게 울었다.

지금도 남편과 얘기하는 생생했던 그 순간,

다부지고 똑바른 발음으로
'응애'라고 외치는 모습에 팔불출처럼
우리애는 나중에 커서 아나운서가 되려나
봐라며 우스갯소리로 주책을 부리곤 했다.


이윽고 구석에서 얌전히 대기하던
남편을 간호사분이 불렀다.

아이와 나의 연결고리 탯줄이 잘리는 순간이었다.

남편 말로는 엄청 질기고 두꺼운 고무줄을
자르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이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회음부를 봉합하고, 아래 흘러나온 피를 닦고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입원실로 향하였다.

출산할 때 꽤나 많은 양의 피를 쏟아냈는데
임신 중에 철분제를 잘 챙겨 먹은 탓인지
다행히 추후 산후 검사에서
빈혈은 따로 없었다고 한다.

밤새 굶은 탓에 배가 많이 고팠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니 바로 저녁밥이 배달되어 왔다.

보통 병원밥을 생각하면 뭔가 싱겁고
맛이 없을 거란 편견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침, 점심, 저녁에 야식까지 이틀을 꼬박
영양가 있게 챙겨 먹고 푹 쉬고

병원 내부에 구비되어 있는 좌욕실에서
하루 2번 뜨뜻하게 좌욕을 하고서

눈 깜빡하니 그토록 기다리던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퇴원 수속을 받고 마지막으로 고생하신
교수님과 간단한 면담과 회음부 소독 후

짐을 바리바리 챙겨 단 며칠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던 다인실을 나왔다.

병원에 갈땐 남편과 나, 둘이었는데
이제는 3명의 가족을 이루어 집으로 향하였다.

입원해있는 동안에는 하루 1-2번 모유 수유하러
갈 때만 아이를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제 하루 종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참 많이 설레었다.


그 설렘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블로그 이미지

로멘

정보 및 리뷰 블로거 _(^@_

,